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Lecture 11

바흐와 음악: 신의 부재를 메우는 유일한 것

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Transcript

신을 믿지 않는 철학자가 평생 가장 독실한 신앙인의 음악에 구원을 구했습니다.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바흐의 음악을 '또 다른 세계'라고 불렀는데, 시오랑은 그 표현을 철학적으로 살았습니다. 허무주의자가 바흐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 이정민, 이것이 오늘 강의의 출발점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음악의 철학적 의미를 논의했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바흐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탐구합니다. 시오랑이 바흐에서 찾은 것은 단순한 음악적 위안이 아닌, 인간 조건을 반영하는 깊은 통찰이었습니다. 바흐는 악보 첫머리에 J.J., 즉 '예수여 도와주소서'를 적고, 마지막에는 S.D.G.,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을 새겼습니다. 음악의 시작과 끝을 신에게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오랑은 신을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바흐를 놓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바흐는 종교적 맥락을 넘어선 음악을 창조하여, 그의 작품이 철학적 사유와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앙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신앙을 초월한 음악, 그것이 시오랑에게 열린 문이었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갈등, 절망, 기쁨, 우정 등 모든 인간 감정을 포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그려냅니다. 특히 B단조 미사의 'Et incarnatus est',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사람이 되는 신비를 묘사한 이 악장은 경건함과 신비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시오랑에게 이 음악은 신학이 아니었습니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작동하는 순수한 감각이었습니다. 바흐의 대위법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연구와 도전의 대상이 되었고, 바흐 사후 한 세기가 지나서야 고전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라는 평가는 시간이 증명했습니다. 이정민, 시오랑의 허무주의는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만이 허무를 견디게 한다고 봤습니다. 바흐의 기악곡은 가사 없이 추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절대음악입니다. 신의 이름 없이도 신의 자리를 채웁니다. 허무 속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구원, 그것이 음악이었습니다. 철학이 침묵하는 곳에서 바흐는 말했고, 시오랑은 그 말을 들으며 살아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