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Lecture 13

회의주의의 극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믿음

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Transcript

회의주의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역설이 생깁니다. 회의주의 자체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철학자들은 이걸 '확실성 오류'라고 부릅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 확신 자체가 무너지는 거죠. 시오랑은 이 역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설 안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무너지는 땅 위에 집을 짓는 대신, 무너짐 자체를 집으로 삼은 겁니다. 지난 강의에서 시오랑이 언어와 믿음 체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다루었다면, 오늘은 회의주의가 사회와 문화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회의주의는 오해받는 개념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회의주의자를 '참된 지식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걸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틀렸습니다. 회의론자들이 권장하는 것은 불신이 아닙니다. 믿음의 중단, 즉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중립적 태도입니다. 이 전통의 시작은 기원전 360년경 엘리스의 피론입니다. 피론학파 회의주의는 정당화된 믿음이 없으며 따라서 지식도 없다고 논증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판단을 유보하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가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완전한 판단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회의주의의 결론은 항상 '~이다'가 아니라 '~일지도 모른다'입니다. 이정민, 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납니다. 시오랑은 이 전통을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이념, 종교, 역사적 진보, 인간의 이성 모두가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회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급진적 철학적 회의주의는 모든 영역에서 지식이나 정당화된 믿음을 부정합니다. 시오랑에게 이건 허무가 아니었습니다. 보호막이었습니다. 어떤 이념도 믿지 않으면 어떤 이념에도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혁명, 종교적 광기를 목격한 그에게 이 태도는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신비주의조차 회의의 대상이었습니다. 외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개인적 통찰은 그에게 또 다른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이정민, 여기서 역설적인 평화가 등장합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을 때, 실망할 대상도 사라집니다. 온건한 회의주의는 신의 존재, 자유의지, 사후 세계 같은 비경험적 문제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시오랑은 그 범위를 삶의 모든 의미 체계로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는 공허가 아니라 고요함이었습니다. 기대가 없으면 무너질 것도 없습니다. 극단적 회의주의가 가져다주는 역설적 평화, 그것은 믿음의 포기가 아니라 믿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시오랑은 그 가벼움 속에서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