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Lecture 2

태어남의 불편함: 존재의 시작에 대하여

에밀 시오랑: 절망의 연금술사가 건네는 독설의 위로

Transcript

SPEAKER_1: 지난 강의에서 시오랑이 절망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오히려 삶의 무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역설을 이야기했잖아요. 오늘은 그 절망의 출발점, 그러니까 태어남 자체로 들어가는 거죠? SPEAKER_2: 정확해요. 시오랑에게 모든 고통의 근원은 존재의 시작, 즉 태어남 그 자체입니다. 1973년에 출간된 그의 책 제목이 바로 '태어났음의 불편함'이에요. 제목부터가 선언이죠. SPEAKER_1: 태어남이 불편함이라니... 보통 사람들은 삶을 선물이라고 하잖아요. 시오랑은 왜 그 반대로 보는 건가요? SPEAKER_2: 그가 보기에 태어남은 동의 없이 던져진 사건입니다. 우리는 존재할지 말지를 선택한 적이 없어요. 그 비자발성이 핵심이에요. 선택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는 요구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라는 거죠. SPEAKER_1: 그게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세계에 던져짐'과 비슷하게 들리는데, 시오랑은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와 어떻게 다른가요? SPEAKER_2: 좋은 연결이에요. 하이데거도 피투성, 즉 던져짐을 말하지만 그는 거기서 실존적 기투, 자기 가능성의 실현을 이야기해요. 사르트르도 자유를 강조하죠. 시오랑은 그 낙관적 전환을 거부합니다. 던져진 것으로 끝이에요. 거기서 의미를 만들라는 처방은 또 다른 자기기만이라고 봐요. SPEAKER_1: 그러면 시오랑 본인의 삶에서 이 생각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한데요. 1911년 루마니아 출생이고, 파리로 이주했다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이 이 철학을 만들었을까요? SPEAKER_2: 그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 있어요. '인간은 무엇을 시도하든, 조만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게 단순한 愚痴가 아니라 시오랑에게는 철학적 공리였던 거예요. 거기에 10대부터 시작된 극심한 불면증, 새벽 3시의 고독이 더해졌죠. 그 밤들이 그를 만들었습니다. SPEAKER_1: 그리고 그는 평생 직업도 없었다고요. 그게 이 철학과 연결되는 건가요? SPEAKER_2: 깊이 연결됩니다. 시오랑은 평생 직업을 가지지 않았고, 영어 교수인 동반자 시몬 부에와 함께 생활했어요. 사회적 성공의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한 삶이었죠. 그는 그걸 실패가 아니라 일종의 정직함으로 봤어요. 성공과 실패의 구분 자체가 인간이 만든 허상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니까요. SPEAKER_1: 사산아를 부러워한다는 표현도 있던데,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닌가요? 이정민 같은 독자가 처음 접하면 충격받을 것 같아요. SPEAKER_2: 충격이 목적이 아니에요. 시오랑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합니다. 사산아를 부러워하는 건 그 논리의 끝을 솔직하게 말한 거예요. 종교적 위로도, 불교의 무위도, 기독교의 구원도 그에게는 없어요. 그 어떤 사후 보상도 태어남의 비자발성을 소급해서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거죠. SPEAKER_1: 그럼 이 책이 아포리즘 형식으로 쓰인 이유가 있나요? 왜 체계적인 논증이 아니라 파편들로 채워진 건가요? SPEAKER_2: 시오랑은 '그 무엇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자만이 확신을 가진다'고 했어요. 체계적 철학은 확신의 언어예요. 그는 그 확신을 믿지 않았죠. 파편적 아포리즘은 시작도 결말도 없어요. 그게 삶의 실제 질감에 더 가깝다고 본 거예요. SPEAKER_1: 그러면 직립 동물로서 인간이 미래를 바라보게 됐다는 분석은 어떤 맥락인가요? 좀 뜬금없이 들리기도 해서요. SPEAKER_2: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시오랑은 인간이 두 발로 서면서 시선이 앞을 향하게 됐고, 그게 미래 지향적 사고와 역사를 만들었다고 봐요. 그는 역사를 '서 있는 종의 산물'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그 미래 지향성이 바로 불필요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의 원천이라는 거죠. SPEAKER_1: 그럼 시오랑이 말하는 해방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태어남이 재앙이라는 걸 인정하면 뭐가 달라지는 거죠? SPEAKER_2: 바로 그게 핵심이에요. '최악은 이미 일어났다'는 인식이에요. 태어남이라는 비자발적 사건이 이미 발생했다면,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추가적인 재앙이 아니에요. 오히려 기대를 내려놓을 근거가 생기는 거죠.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잊히는 행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현자의 조건에 접근할 수 없다'고도 했어요. SPEAKER_1: 그러니까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인식론적 전환인 거네요. SPEAKER_2: 맞아요. 그리고 그 전환은 글쓰기를 통해 완성됩니다. 그가 '한 권의 책은 지연된 자살이다'라고 한 건, 쓰는 행위가 고통을 외부화하고 살아남게 해준다는 의미예요. 고통을 담담히 응시하며 쓰는 것, 그게 시오랑에게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SPEAKER_1: 오늘 강의를 들은 분들이 가져가야 할 핵심이 뭔지 정리해주신다면요? SPEAKER_2: 존재의 시작이 선택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해방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우리 청취자들이 삶에서 느끼는 많은 압박은 '태어났으니 잘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부채감에서 와요. 시오랑은 그 부채 자체가 허구라고 말해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그게 오늘의 메시지입니다.